저번 주 토요일 저녁, OO교회 청년부 임원/리더 정기모임시간. 언제나처럼 몇몇은 회사 일, 또는 기타 (20가지 정도의 서로 다른) 개인사정으로 늦게 올 거라고 했고, 이미 모여있는 사람들 중 극히 일부는 회의 자료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이번 주 교재 발제에 걸린 사람은 트리플A 난이도의 두꺼운 교재를 보며 머릿속에 속성 입력 중이었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한 주간 어떻게 지냈느냐, 그새 이뻐진 것 같은데 추석 때 어디 갔다왔느냐, 그 갤럭시S 참 괜찮다, 오오오 이것은 아이패드... 등등 소소한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전 주, 그 전전 주와 하등 다를 것이 없는 평화로운 시간. 하지만 언제나처럼 웃는 얼굴로 나타나신 목사님의 한 마디에, 그 날은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다음 주가 여러분을 보는 마지막 주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전 주에,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항상 약속 시간을 지키시는 분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모임에 나오지 못한다고 하셨을 때부터 느낌이 살짝 이상했었다. "다른 교회에 면접보러 가신 게 아니냐"라는 의문이 그 날 모인 사람들 사이에 빛의 속도로 퍼져나갔다가 또 사그라들었다. 그 다음 날 "목사님 어제 왜 안 오셨어요?"라고 몇몇 청년들이 물어보아도 그저 허허 웃으며 대답을 회피하셨기 때문. 그러고 보니 참 오래 계시긴 하셨다. 담임목사를 제외한 일반적인 부목사들은 한 교회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평균 2년에서 3년 정도 있으면 다른 교회로 옮겨가게 되기 때문에 한 교회에 오래 다니다 보면 부목사 자리 같은 건 (내가 이 교회에 머무른 시간에 비하면) 그저 휙휙 바뀌는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목사님은 부임 날짜부터 계산해보니 대략 5년. 5년 간 우리 교회 청년부의 절반 이상의 얼굴이 바뀌었고, 그 중에 절반 정도가 결혼에 골인해 청년 타이틀에서 벗어났다. 참 긴 시간이다.
사실 우리 목사님을 처음 보았을 때의 인상은 '목사라기보다는 어디 연구원 같은데?'였다. 평소에 말을 할 때도 조용조용히. 설교시간에는 더 조용조용히. 거기다가 방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신학 세미나 같은 곳에서 발표하면 딱 좋을 듯한 설교 내용. 덕분에 (죄송한 말이지만) 청년부 예배는 낮 1시임에도 불구하고 예배시간에 졸음의 세계로 빠져드는 청년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비단 청년부 뿐 아니라 일반 교인들에게도 우리 목사님의 설교는 '길고 어렵고 졸리는' 설교로 악명 높았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감성보다는 이성 쪽에 치우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설교도 지나치게 감성을 자극하는 설교보다는 새로운 지식들을 쌓아나갈 수 있는 설교를 더 좋아했고, 그래서 (어렵고 길고 졸리다는 점을 빼면) 목사님의 설교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났다면 이 목사님은 그저 지식이 많은 목사님 정도로만 내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방대한 지식보다도 나의 마음을 더 사로잡았던 것은 목사라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나는 가끔씩, 모든 교회가 목사님이 서는 강대상의 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낮추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성경은 책임과 권위가 있는 자리에 올라설수록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주변 사람들을 섬기라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 특유의 권위주의적 색채와 거의 무한한 권위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하나님이 그랬다'라고 하는데 움찔하지 않을 기독교인이 있을까?) 교회의 특성이 합쳐지면서 한국 교회에서 지위의 높아짐은 곧 권력과 재물의 높아짐과 직결되고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근 15년째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규모의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교인 수가 많아서 유명해진 몇몇 초대형 교회들에는 애초에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왠만한 기업 규모의 교회가 운영되다 보면 그 교회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사고는 세속화되고 만다. 아니, 세속화되었기 때문에 그런 규모의 교회를 운영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우리 목사님에게 가장 깊게 감동받은 것은 3년 전 청년들과 함께 캄보디아로 단기선교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보통 해외로 단기선교를 나가면 현지 협력자 분들이 음식이건, 잠자리건 (불편한 가운데에도) 목사님들을 가장 먼저 배려해 드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 목사님은 그 모든 대우를 거절하시고 청년들과 똑같이 생활하셨다. 아니, 가장 고생하셨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건물 보수작업 등 위험하고 힘든 일은 가장 먼저 나서서 하셨고, 매일 밤 늦게까지 회의를 주도하시고도 다음날 아침 가장 일찍 일어나셔서 뻗어 있는 청년들을 일일히 깨우셨다. 식사가 나왔을 때 가장 맛없는 부위를 가져가는 것도 목사님이었고, 후식으로 나온 과일을 먼저 깎아 청년들에게 나눠준 것도 목사님이었다. 우리 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한결같았다. 몇 년간 샤워 한 번 못해본 빈민가의 아이들을 안아주고, 그들을 씻기고 함께 놀아주는 모습. '저런 리더가 있는데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고 못하겠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한낮에는 40도가 가볍게 넘어가는 폭염의 땅에서 그 때 나를 이끌었던 힘인 것 같다.
돌아와서도 목사님의 모습은 똑같았다. 아니, 이전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청년들과 교회 식구들 모두를 섬기는 모습이 이제야 눈에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설교를 조금이라도 잘 듣기 위해 설교 필기를 시작했고, 그러자 설교 내용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동체". 목사님이 지금껏 하신 모든 설교는 "공동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약자를 보호해주고 리더가 구성원들을 섬기는 공동체. 이상적인 가정, 이상적인 교회, 이상적인 사회,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
아마 우리 목사님이 목회활동을 하는 동안 유명해지거나 큰 교회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성격이 너무 조용하고 내성적이기 때문에. 또한 목사님이 가신 교회가 갑자기 교인 수가 늘어난다거나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 어려우니까. 하지만 어떤 교회로 가건, 그 교회에서 목사님과 함께한 사람들 중 몇몇은 나처럼 진정한 리더의 자세와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각자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 - 가정, 회사, 학교 - 에서 그들이 본 리더의 모습을 어렵게 어렵게 실현해 나갈지도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더 나아진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 동안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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